최근 몇 년간 AI 기술은 단순한 도구를 넘어 인간의 창작과 정체성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특히 예술과 대중문화 분야에서, AI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연기까지 하는 '연예인'의 역할을 일부 대체하고 있다.
버추얼 유튜버(VTuber), 버추얼 인플루언서, AI 캐릭터를 앞세운 ‘이세계 아이돌’ 같은 프로젝트는 더 이상 실험이 아니다.
팬들은 실존하지 않는 캐릭터에 열광하고, 기업들은 AI 연예인에게 광고 모델을 맡긴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 연예인은 AI에게 자리를 내줄까? 아니면 공존의 시대가 오는 걸까?
2022년 등장한 ‘이세계 아이돌’은 스트리머 기획자 우왁굳이 기획하고, 여러 인기 스트리머들이 참여한 가상 아이돌 프로젝트다.
이들은 실제 사람이지만 방송에선 3D 아바타로 활동하며, 설정된 세계관과 스토리 속 캐릭터로 살아간다.
실제로 이들은 디지털 싱글을 발매하고 콘서트를 열며, 진짜 아이돌 못지않은 팬덤과 영향력을 얻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아이돌들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무대에 서는 존재는 사람이 아니라 캐릭터고, 팬들은 이 가상의 존재에 감정이입한다.
이세계 아이돌의 성공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남긴다.
“연예인이 반드시 실제 존재해야 할까?”
관객은 결국 ‘서사’와 ‘콘텐츠’에 반응한다. 만약 AI가 그럴듯한 감정과 관계성을 만들어낸다면, 실존 여부는 점점 중요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AI 연예인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릴 미켈라(Lil Miquela)’가 있다.
2016년 등장한 이 가상 인플루언서는 실제 사람이 아닌, CG로 만들어진 AI 기반의 캐릭터다.
하지만 그녀는 실제 브랜드 광고를 찍고, SNS에 일상을 공유하며, 패션 잡지의 표지를 장식하고, 인터뷰도 진행한다.
팔로워 수는 수백만 명에 달하며, 실제 인플루언서 못지않은 영향력을 가진다.
버추얼 인플루언서는 다음과 같은 강점을 갖고 있다:
- 나이가 들지 않는다. 항상 비슷하거나 똑같은 모습을 유지할 수 있다.
-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이 적다. 과거, 성격, 발언 논란이 없고 철저히 기획 가능하다.
- 24시간 활동이 가능하다. 피로도 없이 무한한 콘텐츠 생산이 가능하다.
- 캐릭터성을 일관되게 유지할 수 있다. 브랜드 이미지와 충돌하지 않고, 목적에 맞춰 커스터마이징된다.
특히 Z세대나 알파세대에게는 이질감보다는 신선함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근에는 일반인도 자신만의 AI 연예인을 만들 수 있다.
Character.AI, Deep Agency, Fictional, AI Influencer Generator 같은 플랫폼은
몇 장의 이미지와 간단한 설정만으로 SNS를 운영하는 AI 캐릭터를 생성해준다.
이 AI 인플루언서들은 단순히 사진을 올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실시간 댓글, 자동화된 콘텐츠 제작, 팬과의 Q&A 기능까지 지원되며, 일종의 ‘자율적 연예인’으로 활동한다.
이제 연예인은 소수의 특권이 아니라, 누구나 만들 수 있는 ‘브랜드 자산’이 되어가고 있다.
1. MAVE: (메이브) – 메타버스 기반 AI 걸그룹
- 소속사: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 (넷마블 자회사)
- 데뷔: 2023년 1월
- 구성원: SIU, ZENA, TYRA, MARTY – 전원 가상 캐릭터
- 특징:
멤버 전원이 100% 가상이며, 모션캡처와 음성합성, AI 기반 감정 연기 기술로 제작됨
AI가 창작한 목소리로 노래하고, SNS 활동도 AI가 직접 수행
다국어 인터뷰, 실시간 팬 소통 등도 AI가 자동으로 처리
2. Eternity (이터니티) – 딥러닝으로 만든 얼굴 + 보컬 모델
- 소속사: PULSE9 (AI 전문 스타트업)
- 데뷔: 2021년
- 구성원: 11명의 완전 가상 캐릭터
- 특징:
Deep Real AI 기술로 가상의 얼굴 생성
기존 사람의 목소리를 딥페이크 처리하거나, 합성해 가상 아이돌의 음성과 얼굴을 만들어냄
인터뷰나 팬 커뮤니케이션은 실시간으로 AI가 직접 생성
3. K/DA (케이디에이) – 리그 오브 레전드 기반 버추얼 걸그룹
- 소속사: 라이엇 게임즈 (Riot Games)
- 데뷔: 2018년
- 구성원: Ahri, Akali, Evelynn, Kai’Sa – LoL 캐릭터 기반
- 특징:
게임 캐릭터를 기반으로 한 글로벌 AI/버추얼 그룹
실제 보컬은 인간 가수가 맡지만, 캐릭터 활동 자체는 완전히 가상
뮤직비디오, 라이브 무대, SNS 활동까지 전방위적으로 AI·CG 기술 활용
대표곡: “POP/STARS”, “More”
그렇다면 과거에도 시도된 가상 연예인은 왜 성공하지 못했을까?
사실 1990년대에도 일본의 사이버 아이돌 다테 쿄코, 2000년대 초 한국의 사이버 가수 아담 같은 존재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일시적인 화제성에 그쳤고, 팬덤이 오래 유지되지 못했다.
스토리텔링의 부재
이전 가상 연예인들은 단순히 ‘가상의 존재’였을 뿐, 감정이입할 서사와 인간적인 서브 텍스트가 부족했다.
팬들은 캐릭터를 좋아할 이유를 찾기 어려웠고, 콘텐츠는 수동적으로 소비되었다.
플랫폼의 한계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같은 양방향 소통 채널이 없던 시절에는 팬과의 관계 형성이 어려웠다.
팬덤이 자발적으로 세계관에 참여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기 힘들었다.
실재감 부족과 기술의 제약
예전에는 표정, 몸짓, 음성 등에서 현실감을 구현할 기술이 부족했다.
지금은 AI 음성합성, 모션캡처, 실시간 스트리밍 기술 덕분에 AI가 인간처럼 느껴질 수 있다.
이처럼 과거에는 기술적·사회적 환경이 성숙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연예인은 장점이 있다.
바로 진정성과 공감이다. 팬들은 단순히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 서사’를 함께한다.
어린 시절부터 연습생 생활을 거쳐 데뷔하고, 점점 발전해가는 모습을 보며 감정적으로 연결된다.
또한 인간 연예인은 리얼리티 예능, 팬미팅, 라이브 공연 등에서 비예측적인 감정의 순간을 보여준다.
AI는 시나리오 안에서 완벽하게 움직일 수 있지만, 때때로 그 불완전함이 오히려 팬들에게 감동을 주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예인은 AI로 완전히 대체될 수 있을까?
콘텐츠 제작, 브랜드 광고, 이미지 관리 같은 영역에선 AI가 훨씬 효율적이다.
앞으로는 인간 연예인, 버추얼 캐릭터, 그리고 하이브리드 형태의 연예인이 함께 존재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연예인의 본질이 ‘사람’이 아니라 ‘스토리를 전달하고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라면, 그 역할은 인간이든 AI든 누구나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