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스타트업 업계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이제는 성장보다 효율이다.”
특히 시리즈 C 이상, 소위 Late-Stage 단계에 들어선 스타트업들에게 이 말은 정말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이미 시장에서 제품의 필요성은 입증했지만, 매출 성장이 예전처럼 빠르지 않고, 고객을 새로 확보하는 비용은 점점 올라갑니다.
더 이상 무작정 사람만 늘리거나 마케팅 예산만 투입한다고 해결되지 않는 거죠.
최근 TechCrunch Disrupt 2025에서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바로 AI가 Go-To-Market(GTM) 전략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는 겁니다.
예전처럼 영업 인력을 무한정 늘리거나 광고비를 쏟아붓는 시대는 지났고, AI가 세일즈와 마케팅, 그리고 고객 관리의 방식을 완전히 새롭게 디자인하고 있다는 거죠.
Late-Stage 스타트업의 전형적인 성장 방식은 사실 뻔했습니다.
첫 번째는 세일즈 인력을 대규모로 확장하는 겁니다.
각 지역에 오피스를 열고, 영업사원 수십 명을 고용해서 직접 고객을 만나 계약을 따내는 방식이죠.
하지만 이건 엄청난 인건비 부담이 따르고, 계약까지 걸리는 시간도 길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는 대규모 마케팅 캠페인입니다.
컨퍼런스 부스를 차리고, 온라인 광고를 돌리고,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데 집중하는 거죠.
하지만 여기에도 큰 문제가 있습니다. 광고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 실제 매출로 이어지는 비율은 생각보다 낮습니다.
즉, 기존 방식은 “돈으로 시간을 사는 전략”이었는데, 지금은 투자 환경이 예전 같지 않으니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겁니다.
여기서 AI가 등장합니다. 제가 느끼기에도 AI는 GTM에서 세 가지 큰 변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첫째, 세일즈 자동화입니다.
예전에는 영업사원이 일일이 콜드 이메일을 보내고 LinkedIn에서 사람들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AI가 고객의 산업, 직무, 관심사에 맞춰 초개인화된 메시지를 자동으로 작성하고 보낼 수 있습니다.
또 CRM 데이터를 기반으로 “어떤 고객이 전환 가능성이 높은가”까지 점수화해주니, 세일즈 팀은 정말 집중해야 할 고객에게만 에너지를 쏟을 수 있게 됩니다.
둘째, 마케팅 효율화입니다.
블로그 글, 광고 카피, 소셜미디어 게시물을 AI가 직접 만들어주고, 동시에 어떤 버전이 더 효과적인지도 빠르게 테스트해줍니다.
예전 같으면 팀이 며칠 걸려 준비해야 했을 콘텐츠가 하루 만에 수십 개 나옵니다.
덕분에 ROI가 낮은 캠페인은 일찍 접고, 효과 좋은 캠페인에 집중할 수 있죠.
셋째, 고객 성공(Customer Success)의 혁신입니다.
SaaS 기업이라면 고객 유지율이 곧 성장입니다.
AI는 고객 사용 패턴을 분석해 “이 고객이 곧 이탈할 수도 있다”는 신호를 미리 잡아냅니다.
또 기본적인 문의는 챗봇이 처리하고, 복잡한 문제만 매니저가 맡으니 인력 비용도 줄고 고객 만족도도 올라갑니다.
물론 장밋빛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닙니다.
기회는 분명합니다.
고객 획득 비용(CAC)을 크게 줄일 수 있고, 언어와 문화 장벽을 넘어서 글로벌 시장에 더 쉽게 진출할 수 있습니다.
또 모든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분석해서 “왜 매출이 늘었는지, 왜 줄었는지”를 더 빠르게 파악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리스크도 큽니다.
고객 데이터를 AI 학습에 활용하다가 프라이버시 문제에 걸릴 수 있고, AI가 잘못된 정보를 고객에게 제공하면 오히려 브랜드 신뢰를 잃을 수도 있습니다.
또 각국의 규제가 점점 강해지고 있어서, AI를 활용하는 과정 자체가 법적 리스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 흐름이 단순히 도구의 변화가 아니라, 조직 구조 자체를 바꿀 수밖에 없는 변화라고 봅니다.
AI 툴을 하나 도입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GTM의 KPI 설계부터 세일즈 팀의 역할까지 새로 정의해야 한다는 거죠.
한국 스타트업도 예외는 아닙니다.
SaaS 기업이라면 AI 기반 영업 자동화로 해외 고객을 공략할 수 있고, 이커머스라면 AI가 추천 시스템과 마케팅을 동시에 혁신할 수 있습니다.
다만 데이터 보안과 신뢰성 문제는 반드시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Late-Stage 스타트업에게 AI는 단순한 선택지가 아니라 생존 전략입니다.
이제는 “사람을 더 뽑자”가 아니라, “AI로 기존의 GTM 방식을 완전히 재설계하자”가 정답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