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를 시작하고 나서 생긴 이상한 습관이 있습니다.
노을을 놓칩니다.
좋은 빛은 화면을 보고 있는 동안 지나갑니다.
고개를 들면 이미 파란 시간이고, 끝나 있습니다.
같은 집에 3년을 살았는데 여기 해가 몇 시에 지는지 대답을 못 합니다.
그래서 그냥 알려주는 걸 만들기로 했습니다.
오늘의 일몰 시각을 보여주고, 그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화면이 천천히 그 색으로 물드는 앱.
끝나고 나서가 아니라 끝나기 전에 알아채려고요. 만드는 과정을 기록해뒀습니다.

Bunzee에 문장 하나를 넣었습니다. "하루를 색으로 바꿔주는 한 화면짜리 앱."
기획서도 없고, 레퍼런스도 없고, 화면 스케치도 없었습니다. 머릿속에 있는 건 "사무실에서 퇴근 시간 즈음 창문이 주황색으로 변하던 느낌"뿐이었습니다.

의외였던 부분입니다. 제가 기대한 건 예쁜 화면이었는데, 먼저 돌아온 건 정보 구조였습니다.
- 3개 경로(Onboarding / Today / Styles)
- 9개 화면
- 39개 컴포넌트
각 화면마다 무엇을 위한 화면인지 설명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타이머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제가 요구한 적은 없지만, "색으로 알려준다"는 문장 안에 이미 들어 있던 조건이었습니다.
숫자로 카운트다운하는 순간 이 앱은 다른 물건이 되니까요.
디자이너로서 이 단계가 제일 오래 걸립니다.
화면을 그려봐야 아이디어가 말이 되는지 알 수 있고, 말이 안 되면 이틀을 버립니다.
그 이틀이 없었던 게 속도보다 중요했습니다.

와이어프레임은 뼈대라서 이것만으로는 이 아이디어가 좋은지 판단이 안 됩니다.
Bunzee에 있는 250여 가지 글로벌 디자인 스타일 중에서 이 구조에 맞는 6개를 추천받았고, 그중 낮에서 황혼으로 넘어가는 팔레트 하나를 골랐습니다. 고르는 즉시 와이어프레임에 디자인이 입혀지고, 클릭되는 프로토타입이 나왔습니다.
수정은 말로 했습니다. "하단 탭을 4개에서 3개로 줄여줘" 같은 문장을 넣으면 해당 화면이 바로 바뀝니다. 피그마를 열지 않았습니다.
코드는 한 줄도 쓰지 않았습니다.
자기 디자인 시스템은 아직 가져올 수 없습니다. 스타일은 이미 시장에 나와 있는 제품들에서 가져오기 때문에, 본인 브랜드 가이드가 있으면 넣을 자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첫 시안은 첫 시안입니다. 저도 뒤에 여러 군데 손봤습니다.

솔직하게 쓰면, 저는 여전히 늦게까지 일합니다. 그건 안 고쳐졌고 화면 하나가 고칠 수 있는 문제도 아닌 것 같습니다.
바뀐 건 더 작습니다. 시계를 안 보게 됐습니다.
5시 반쯤 화면이 주황색으로 변하고, 그때 하루가 어떤 형태를 갖고 있다는 게 느껴집니다.
11시에 노트북을 닫는 게 "떨어져 나간" 게 아니라 "끝난"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게 진짜 변화인지 비싼 플라시보인지는 3일로는 모르겠습니다.
만드는 게 싸졌다는 말은 많이 하는데, 저는 다른 쪽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이거 만들어볼까"와 "만들어봤다" 사이가 짧아지면, 시도할 가치가 없다고 스스로 걸러내던 것들이 통과합니다. 노을 앱은 정확히 그 범주였습니다. 검증할 시장도 없고 쓸 사람도 저뿐인데, 만드는 비용이 싸지니까 만들어졌습니다.
여러분 메모장에도 그런 게 하나쯤 있을 겁니다. 창업 아이템 말고요, 계속 고칠까 말까 하다 마는 사소한 불편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