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제 개인적인 커피 경험을 다루는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
스페셜티 커피 아이템과 시장에 대한 가벼운 생각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title 이미지는 https://commons.wikimedia.org 의 CC License 이미지입니다.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저가형 커피 전문점을 취향에 맞게 연결해 주자.”
지금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3년 전 첫 출발은
지금과 같은 스페셜티 원두를 찾아 주는 서비스가 아니라,
매장을 찾아서 연결해 주는 서비스였습니다.
매장마다 미묘하게 커피 맛의 차이가 다르니까, 원두 정보를 보여주고
커피 맛 취향에 맞는 매장을 연결해 주는 서비스.
조금 공부를 해 보니,
‘저가형 커피 매장의 커피 원두 정보를 보여준다’,
‘맛과 향 취향에 맞춰 연결해 준다’는 건 현실에 맞지 않았습니다.
영업 비밀일 수도 있고, 좋은 원두 쓴다는 홍보와 다를 수도 있어서 공개하길 꺼릴 겁니다.
대다수의 저가형 커피 매장들이 가장 잘 팔리는 평균적인 맛을 목표로 하기 때문입니다.
설문에 따르면 저가형 매장을 찾는 사람들의 선택 기준도 맛과 향보다는 ‘얼마나 가깝냐’는 겁니다.
1분 1초가 아까운 현대인들이 맛의 차이도 그렇게 크지 않은 2,000원 정도하는 커피에서
취향에 맞는 맛과 향을 찾기 위해 앱을 켜서 서비스를 사용한다는 가정이 허무맹랑한 소설인 셈이죠.
시장 상황이나 소비자의 니즈도 전혀 조사하지 않은 무모한 기획은 잠정적으로 중단됩니다.
평범함이 반복되는 일상이 지속되던 중,
점심 시간에 밥 먹고 나서 우연히 발견한 커피 전문점에서 프로젝트를 재개할 명분을 찾았습니다.
커피 전문점이라고 했지만 커피 전문점이라고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네요.
앉을 자리는 있는데 카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좌석이 아니고요.
사장님은 소파에 앉아서 큰 모니터 여러 개 띄워 놓고
하나는 주식 보고, 하나는 뉴스 보고, 하나는 예능 프로그램 보고 계십니다.
손님 오면 친절하게 응대는 또 잘 해 주시고요.
진열장의 다양한 커피 원두, 커피를 내리는 다양한 도구들, 다양한 종류의 잔들을 보고 직감했습니다.
‘은둔고수구나!’
당시에 무슨 원두를 골랐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당연히 평소에 마시던 커피와는 차원이 다른 맛이었습니다.
그 맛에 반해서 자주 찾게 되었고,
지금은 다른 매장에서는 한 잔에 몇 만원 하는 비싼 커피도 가끔 서비스로 얻어 먹고
앉아서 커피에 대한 궁금증,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단골이 되었고,
커피 원두는 와인만큼이나 맛과 향이 다채롭다는 점을 더욱 상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 가게에 갈 때마다 커피 원두에 써져 있는 설명을 꼼꼼하게 읽어 봅니다.
하지만 아무리 읽어도 다양하게 진열된 커피 원두 중에서 거기에 써 있는 정보만을 참고해서
제 취향에 맞는 원두를 고르는 게 쉽지가 않았습니다.
하루는 원두에 붙어 있는 설명을 하나씩 읽으면서 뭘 고를지 고민하고 있는 저한테
사장님께서
“평소에 좋아하는 과일이나 음식 같은 거 있어요?”
라고 질문하셨고,
제가 좋아하는 과일과 선호하는 맛에 대해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사장님께서 추천해 주신 원두는 제 입맛에 아주 가까웠습니다.
‘쉽고 간단하게 취향에 맞는 커피 원두 매칭’이 실현된 경험이었습니다.
일상에서 우연히 만난 이 가게를 통해, 저가형 커피 매장이 아니라, 스페셜티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저가형 커피 매장을 연결해 준다는 첫 번째 구상이 실패했던 세 가지 이유를
거꾸로 성립시켜주는 아이템이 스페셜티라고 생각했습니다.
첫 번째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가설이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여전히 고민의 여지가 남습니다.
원두마다 맛의 차이가 다른 것은 맞지만,
맛에 예민하지 않은 사람들도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는가?
확연한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는다면 이 서비스의 사용 가치가 있을까?
스페셜티를 찾는 이유가
커피 그 자체의 맛과 향에 대한 경험보다는
스페셜티 매장의 ‘차별화된 컨셉’ 그 자체에 방점이 놓이는 게 아닐까?
(스페셜티 매장을 찾는 이유가 인스타 감성 때문이고 일시적인 유행이라는 의견도 있거든요.)
물론 차별화된 맛과 향을 경험하려는 사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커피 원두를 구매해서 집에서 직접 커피 내려 마시는 사람들입니다.
(홈카페도 일시적인 유행일 수도 있겠지만,)
커피 원두를 구매해서 집에서까지 마실 생각을 할 정도면
커피 맛과 향을 알아가려는 시도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페셜티가 맛과 향의 차별화된 특색을 보여준다는 가설은
그 경험을 지속 시켜줄 수 있느냐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맛이지? 했던 음식이었는데
몇 번 먹어보고 그 맛을 알게 된 경험이 있으시다면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실 겁니다.
‘스페셜티를 통해 커피 취향의 발견과 발전’이라는 프로젝트의 미션은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스페셜티라는 아이템에 매력을 느끼시거나,
이 아이템에 대한 저의 미션과 계획에 동참하고 싶으시거나,
이 아이템과 저의 미션과 계획에 태클과 딴지를 걸고 싶으시다면
커피챗 언제든 환영입니다.
편하게 불러 주세요.